죽은, 혹은 죽어가는, 혹은 죽진 않은듯한...

하늘에 비가 오는건지 안 오는건지 구분 안되는 밤길 속에서

하루에 한 것도 없는데, 한 껏 피곤함으로 눅눅히 젖은 몸뚱이라 꾸역꾸역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스쿠터. 여자.



저 멀리, 한 여자가 스쿠터를 타고 오는데,

육교 조금 지나쳐서

뒤에 놓던 가방이 툭... 하고 도로에 떨어졌더라.





가방이더라.

난 내 갈 길을 가더라.

내 쪽에 조금 못미쳐서

갑자기 뒷좌석을 만지더니

허겁지겁 스쿠터를 세우더라.

뒤에서 차가 쌩쌩 지나가는데도 급히 세우더라.





가방. 중요했나 보더라... 하고 생각하고 가던 도중........

여자가 스쿠터를 도로 옆에 세우고,

허겁지겁 뛰어오더라.

가방이 놓여있는 쪽으로.





그 때까지 난 그게 가방인줄 알았다.

머릿속으로 살짝 상상도 해봤더라.

저걸 주워줄까, 말까, 귀찮은데 알아서 하겠지, 이것도 인연 아닐까, 아니다 잡생각 말아라.

머릿속에 수 없이 많은 고함을 죄다 무시하고,

난 아예 고개를 돌려 호수 구경하면서 길을 가던 도중.............................




여자가 가방떨어진 곳에 도착했더라.

가방을 들더라.

그것도 아주 조심히.

난 그게 가방인줄 알았다더라.





그게 알고보니 고양이더라.

두 눈에 빛이 없더라.

몸이 살짝 굳은 듯하더라.

조금 전에 지나간 차가 밟고 간건 아닐까?

아니지, 그 전에 오토바이 하나 지나간 듯도 했는데...

그럼 뭐하냐. 저건 남 일이다. 내 갈 길 가자................. 란 마음으로 그냥 지나...갔더라.





그게 참 싫더라.

죽은 생물 보고도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지

나 스스로가 참 싫더라.




정말 정말 싫더라.

스쿠터 주인인 그 여자가

고양아.... 고양아..... 하면서 울며

스쿠터 쪽으로 걸어가더라.





울더라. 여자가.

두 팔로 품에 안고

내 머릿속 판단으론 죽은건지 산건지 어차피 내 일 아니니 아무렴 어떠냐 라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고 싶었지만,

분명 눈빛을 잃은 고양이는 굳어있었다.

놀라서 굳어 있는 건지는 나중에나 생각해 볼 일.

내 머릿속엔 그 고양이는 죽었다.






육교 건너오면서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더라.



아무렇지도 않더라.

왜 슬픈지도 생각나지 않더라.

그리고 문득 떠오르더라.

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일.




그 때도 눈물이 나오질 않더라.

슬프지도 않더라.

내 큰 고모께선 나에게

너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네가 이 일을 도맡아 해야한다 라며

효도하라 하시더라.






참 싫더라.

그 여자가 고양이를 앉고 울면서 걸어가는데,

난 그 모습에

애써

가식적으로

그 누가 보지 않았음에도

놀란 척 해줬더라.






더 웃긴건

육교 지나가면서

그 여자 울음소리 들리면서

하늘에서 비가 오기 시작하더라.





참 타이밍 지랄같더라.

by 트라야누스 | 2007/10/04 11:36 | 作 - 지을 작 | 트랙백 | 덧글(0)

남쪽나라

시험을 봤던 시험장에,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아무튼 동창을 만났다. 물론 내 입장에서만.

상대방은 날 알아보지 못했다. 뭐, 별 일 있었겠는가. 시험 끝나고 서로 남남처럼 그냥 제 갈 길 갔다.

물론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갔다면, 내가 왜 동창 만난 이야기를 꺼냈겠는가.

어느 정도까지는, 적어도 시험장 내부에서는 그 녀석과 내가 같은 방향이었다.

 

그 녀석의 뒤에서 걷는다. 적당한 거리, 날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거리.

그만큼의 거리에서 녀석을 관찰한다. 동시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안 좋다고 생각되는 내 버릇 중에는, 남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굳이 뒤에서도 아니고, 높은 건물의 창문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머리 꼭데기에서도 관찰한다.

난 그게 즐겁다. 내 존재를 감추고, 남의 행동을 관찰하고, 눈빛을 관찰하고, 시선을 관찰하는게 즐겁다.

일종의 관음증 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나는 관음증은 아니다. 내가 관찰하는건 '사람'이다.

관음증은 '타인의 나체 혹은 성교'를 몰래 관찰해서 성욕을 해소하는 사람이다.

난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움직임, 시선들을 구경하는게 재미있을 뿐.

 

아무튼 저 앞에 가는 녀석은 내 동창이다. 틀림없다. 입가에 있는 묘한 세로 줄무늬의 주름과

약간은 독특한 목소리에서 난 알 수 있었다. 녀석은 긴 우산을 들고간다.

난 생각해본다. '저 녀석과 무슨 추억이 있을까...'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 저 녀석의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이

아주 흐릿하게 떠오른다. 그게 전부다. 그 이상은 떠오르는게 없다.

녀석은 곧 나와 헤어져서 다른 길로 간다.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동창.'

 

나는 다시 갈 길을 간다.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마음을 무겁게 짖누르던 시험이 끝나서 그런가?

하지만 비오지 않는 하늘일 뿐. 내 마음처럼 흐린건 마찬가지다.

비가 오지 않는다고 맑은 날씨는 아니니까. 아무튼 시험은 끝났다.

조금은 홀가분하게, 뭐 이래저래 답답한 마음이지만, 부모님께 시험 끝났다고 전화를 한다.

아버지께서 가게까지 걸어오라 하신다.

시험장 뒷길로 난 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어찌어찌 가게로 가는 길이 나온다.

대략 걸을 시간이 30분. 아버지의 말씀이다. 제천에서의 경험처럼, 무작정 걸어본다.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미소리다.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꽤나 시끄러운 소리.

시끄러운 소리라 해도, 마냥 싫은 소리는 아니다. 자연의 소리 중에 싫은 소리는 거의 없다.

 

매미. 흔히 17년 땅 속 생활로 알고 있는데, 그런건 초 유니크 매미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많은 매미는 대충 5년 정도 땅 속 생활을 한다. 뭐, 아무렴 어떤가. 5년이나 17년이나.

잡생각이 또 든다.

 

매미는 5년을 살다가 밖으로 나와서 2개월 울다가 죽는다.

그렇다면, 매미가 우는 나무 아래의 흙은 5년은 되었다는 것이군!

뭐, 물론, "다른 곳에서 날아온 매미 일지도 모르잖아?" 라고 한다면, 할 말 없다.

대꾸는 아니지만 이렇게 물어는 볼 것이다. 소심하게 발끈하는 마음으로, "매미 날아다니는 것 봤어요?"

 

아무튼 매앰매앰-

 

이곳은 따뜻한 남쪽나라. 건물보단 논이 많은 곳.

양 옆이 논이다. 그 사이에 차 한대 지나가고 조금 지나갈만한 좁은 길. 그 길을 걸어간다.

하늘엔 구름이 한가득이다. 비는 그쳤으니 회색빛 구름은 거의 없다.

기분 좋은 느낌의 뭉게구름이 이곳 저곳 뭉게뭉게 떠다닌다.

 

아주 더움 - 더움 - 선선함 - 시원함 - 아주 시원함의 난이도에서 더움과 선선함의 사이의 바람이 분다.

흐르는 땀을 떨구기엔 약한 바람.

그래도 바람 분다는 것이 어딘가, 이것 마저 없으면, 난 쪽팔려도 우산을 펼 것이다.

지금 내리쬐는 햇빛이 그만큼 덥다. 진짜 덥다.

 

땀이 흐르지 않기 위해서, 걸음걸이와 호흡 수를 조절한다.

무슨 말이냐면, 나만이 하고 다니는 것 같은 4박자 걸음걸이.

총 4걸음 걸으면서 첫 번째, 두 번째 걸음에서는 숨을 들이쉬고, 나머지는 내쉰다.

별 쓸모는 없다. 그냥 내가 저렇게 걸으면, 땀이 좀 덜 나고, 힘이 좀 덜 드는 느낌이다.

 

아무튼 걷는다. 그다지 도착지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논길.

 

주위를 살짝 둘러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더워도 재밌는건 온천지에 널려있다.

 

넓은 논에 바람이 불면 재밌는 것을 볼 수 있다.

형체가 없는 도깨비가 걸아가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흡사 토토로에 나온 작은 토토로 가족들이 나들이 가는 것 처럼, 논 이곳 저곳이 물결친다.

 

잠자리가 활공비행 하는 것 본 적 있는가? 나는 잠자리가 어떻게 날아다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잠자리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 그냥 공기중에 '붕'떠있는 것을 봤다.

그 순간 머릿속에 번뜩 생각나는 것은, '너도 덥냐?'

 

비가 온 뒤의 세상이다.

논 사이 사이에 있는 깊은 것 같으면서도 얕은 것 같은, 그런 도랑에서 할아버지가 낚시를 한다.

할머니에게 바지를 빌려입으셨나보다. 바지가 펑퍼짐하다.

이글이글한 태양빛 아래서 오직 모자 그늘 하나로 버티신다. 물고기가 낚였는지 아닌지, 그건 모른다.

 

논길이 바뀌었다. 흙길은 끝. 이제부턴 아스팔트 길이다.

내 걸음걸이는 왠만하면 소리내지 않는 걸음걸이이다.

그래서 아스팔트 길을 걸으면 주위가 조용해진다.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매앰--

높은 고음으로 한없이 수렴하는 매미 소리. 귓가에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

 

하늘에 구름이 잔뜩이지만, 지상엔 그늘 한 점 없다. 덥다. 덥다. 무지무지 덥다.

 

살짝 더운 내 기분이, 세상을 답답하게 만든다.

하늘엔 구름 한가득. 지상엔 논이 한가득. 양쪽에 압축된 듯, 공기마저 답답하다.

 

'긍정적으로! 긍정적으로!' 주위에 재밌는 것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위는 하얀색, 밑은 녹색으로 숨막힐 것 같은 공간에, 저 멀리 굴뚝이 보인다.

 

'아, 굴뚝!'

예전에는 군산 어디에서나 장항에 있는 큰 굴뚝이 보였다. 장항은 금강 건너편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지금은 변변치 못한, 이름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듯한 도시, 군산과 장항.

항구도시 군산, 제련소가 유명했던 장항. 그러나 이런 지식은 1990년대 초에나 써먹힐 것들이다.

지금은... 그냥 모르고 사는게 기억공간 활용에 더 도움 될 것이다.

 

답답한건 변하지 않는다. 기껏 보인 굴뚝으로는 재밌는게 떠오르지 않는다.

 

거의 다 왔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기리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점. 내 앞에 곧 들이닥칠 세 갈래길. 과연 난 어디로 가야하는가!

발걸음을 조금 느리게하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갈래길이다. 나는 벽이 세워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이 근처는 A-Town이다. American Town. 주한 미군이 심심하면 나오는 곳. 생활하는 곳이다.

우리 부모님께선 옷을 만드신다. 이 A-Town의 입구에서.

 

담이 있다. Town을 둘러싼 듯 할 만큼 매우 길다.

벽 아래로 작은 개울이 있다. 비가 왔으니 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 아래로 녹조류가 잔뜩 끼어있다. 지은지 꽤 오래된 듯 하다.

 

이 동네는 길이 꼬불꼬불하다. 이곳이 저곳같고 저곳이 이곳같다.

경사있는 언덕이 없는데도, 단지 집 두 채에 의해서 건물의 간판이 모두 가려지는 희귀한 곳.

그래서 예전에 길을 잘못가서 이상한 쓰레기 매립장까지 간 적도 있다.

두 번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벽을 따라서 걷는다.

 

벽을 따라 걸으니 바람이 불어온다. 그다지 시원하진 않지만 그래도 땀방울 몇 개는 쓸고 지나간다.

 

슬슬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길을 걸어오면서 봐왔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우리 가게 간판이 보인다. 그 곳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한가득 있을 것이다.

시험은 어떻게 봤다고 해야할까, 앞으로 뭘 해야할까,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어떻게 해쳐나갈까.

 

이것저것 머릿속은 꽉 차있지만 울상짓는다고 해결될 것들이 아니다.

웃는 얼굴로 가게를 들어가며 부모님에게 말한다.

 

"다녀왔습니다."

by 트라야누스 | 2007/08/06 01:13 | 作 - 지을 작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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